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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에 출신된 장한나의 음반 재킷을 보면 짧게 자른 커트머리가 아주 인상적이다.
이전에 보여준 앳된 모습과는 달리 성숙한 이미지의 표출이라고나 할까?
그녀의 심경변화를 예고하듯 지난 2월 발매된 음반은 마치 소녀에서 성인으로 변한 모습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우리는 이전과는 또 다른 모습의 장한나를 4월 13일 확인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내한연주여서 그런지 좀처럼 그녀와의 접촉이 쉽지 않았다. 아니 전혀 되질 않았다. 그도 그럴것이 하버드의 ‘프레시맨’으로, 그리고 세계적인 첼리스트로 활동하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대학생활에 전념하기 위해 연주 수를 대폭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각 등지에서 그녀를 찾는 목소리는 여전히 높기만 하다. 장한나 역시 연주활동은 물론 학업에 소홀히 할 수 없음을 아는지라 모든 이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는 없을 것이다.
2월부터 시작되는 유럽 순회연주 그리고 로린 마젤과 함께 하는 일본연주에 이어 계획에 없던 한국 방문은 어쩌면 그녀의 나라이기에 감행된 결과라고 볼 수 있겠다.
자주 만날 수 없는 연주자를 일년에 그것도 4월과 8월에 걸쳐 두 번이나 본다는 사실은 실로 우리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한다.

우리가 아는 장한나는 열한 살 때 언론에 조명을 집중 받으며 그 모습을 드러냈다. 공식적으로 데뷔한 94년 로스트로포비치 국제 콩쿨에서 ‘최연소 우승’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그녀는 이미 열한 살의 소녀가 아닌 프로 연주자의 모습이었다. 자기 나이 또래보다 두 배는 진지하고 성숙한 모습에 그녀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과 연주자들을 놀라게 했고, 나이가 어리다는 것 자체가 천부적인 음악적 재능과 동의어인 양 통용되는 음악계의 풍토 안에서 장한나는 단지 상품성이 좋은 여타의 어린 연주자들과는 달랐다.
몇 년 전 한 TV프로그램을 통해 어린 그녀가 레코딩에 맞춰 연습하는 장면을 본적이 있다.
아홉 살 정도 되었을까? 레코딩에서 흘러나오는 오케스트라의 반주에 맞춰 마치 자신이 협연자라도 되는 듯, 하이든의 ‘첼로 협주곡 C장조’를 간드러지게 연주하는 모습에 넋이 나갔었다. 그 장면이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있는 것을 보면 장한나가 이미 세계적인 첼리스트가 될 것을 예견하는 안내방송에 지나지 않았음을 예고하는 듯하다.

“음악적 스케일이 너무나 거대해 상상을 초월한다. 첼로는 작지만 재능은 유감없이 발휘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세계적인 센세이션이라 할 수 있다. 장한나처럼 재능이 있는 아이를 잘못 키우면 내가 죄를 짓는 것이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내가 지금까지 만난 음악가 중에서 장한나만큼 큰 충격을 준 사람은 없었다. 이런 식으로 성장하다 보면 과연 어디까지 성장할지 나로서도 알 수가 없다” (주제페 시노폴리)

♠ 마이스키·로스트로포비치는 잊지 못할 스승
줄리어드 예비학교를 거쳐 연주자로서 성장하는 동안 실로 많은 세계 정상의 교향악단들이 그녀와 호흡을 맞췄다. 뉴욕 필·드레스덴 스타츠카펠레·몬트리올 심포니·베를린 필·이스라엘 필 등 많은 오케스트라와 그때마다 만난 지휘자들. 어찌 보면 오늘의 장한나를 있게 해 준 장본인들이다. 물론 그녀의 머릿속엔 자신과 협연한 수많은 지휘자들이 다 떠오를 테지만, 장한나의 사고속에 잠재되어 있는 예술가적 자질을 가르쳐 주고 일깨워 준 스승은 아마도 미샤 마이스키·로스트로포비치·그리고 시노폴 리가 아닐까?
이들과의 만남은 1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첼리스트 미샤 마이스키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장한나의 부모는 이 거장에게 딸의 연주 테이프를 보낼 수 있는 기회를 얻었고, 이어 그에게 ‘제자로 받겠다’는 답을 받은 후, 그의 마스터 클래tm에 참가하면서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다. 미샤 마이스

2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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