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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성적으로 직접 보고 체험한 것들을 좋아한다. 내가 어렸을때 경험했던 피아노와의 만남 그리고 바이올린…. 다행히 일찍이 이런 음악적 경험을 한것에 대해 참 행운이 많은 아이인 듯싶다. 바이올린, 그것은 우연한 만남이었다. 이렇게 즐기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그저 행복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오랫동안 기다렸다. 어떤 모습으로 변했는지, 그리고 어떤 연주를 들려줄지 모든 것이 궁금했다. 2001년 LG아트센터에서 만난 이후로 2년만에 다시 우리를 찾는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 어리기만 했던 열여섯의 소녀가 이젠 열여덟 숙녀가 되어 멋진 레퍼토리를 우리에게 선보이려 한다. 방대한 양(?)의 질문을 이메일로 보내고 일주일이 채 안돼 답변이 왔다. 역시 생각했던 것처럼 그녀는 똑똑한 연주자로 변해 있었다.

새로운 학교에 적응도 해야 하고(인디애나 음대에서 얼마전 뉴 잉글랜드 콘서바토리로 옮겼다), 리허설과 연주도 해야 하고… 항상 바쁘게 지내지만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는 이런 시간을 되도록이면 기쁘고 즐겁게 보내기 위해 노력한다. 왜냐하면 이 ‘길’은 그토록 유라가 원하고 갈망했던 ‘길’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6일, 뉴욕의 성 요한 성당(St. John the Divine)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의 협연이 있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지휘자 로린 마젤과 그의 군단 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그리고 이유라가 연주한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는 ‘메모리얼 데이’(Annual Memorial Day) 기념 콘서트를 위해 자리한 9천여 명의 관객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빠져들게 했다. 이렇게 로린 마젤과 함께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해 지휘자 콩쿨 심사차 인디애나 음대에 들렀던 로린 마젤이 이유라의 연주를 듣고 그 자리에서 뉴욕 필하모닉의 솔리스트로 제의를 했기 때문이다.

“로린 마젤과 함께 한 콘서트는 그야말로 환상적이었습니다. 물론 로린 마젤이 이끄는 뉴욕 필의 수준 때문만이 아닌, 모두가 함께 기쁜마음으로 즐겁게 연주를 했기 때문입니다. 로린 마젤은 정말 훌륭한 지휘자예요.”

이번 연주 이외에도 이유라는 로린 마젤과 함께 6월 26일, 7월 12일 그리고 18일, 협연을 했다.



그녀가 오늘에 있기까지

바이올리니스트 이유라는 병리학 교수인 아버지와 고등학교 선생님인 어머니 사이에서 1985년 태어났다. 재미삼아 피아노를 치던 이유라에게 음악적 재능이 있음을 간파한 부모님은 피아노 대신 바이올린을 권유함으로써 그녀를 또다른 음악의 세계로 안내한다.

김남윤 선생의 지도아래 체계적인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한 이유라의 나이는 다섯 살. 하지만 이유라는 그 이듬해인 1990년 한국일보 콩쿨에서 대상을 받는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2년 후 KBS 교향악단과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함으로써 국내 무대에 정식 데뷔한 이유라는 1994년 미국으로 건너가 일명 ‘줄리어드 사단’으로 불리는 도로시 딜레이와 강 효 교수에게 지도를 받게 되었다.

“제가 줄리어드에 있었던 1994년부터 2001년까지 도로시 딜레이와 강 효 선생님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입니다. 단순히 음악적인 것뿐만 아니라 삶 자체에 말이죠. 도로시 딜레이 선생님은 돌아가셨지만 선생님께서 제게 해주셨던 말씀은 영원히 가슴속에 남아 있습니다. 선생님께선 ‘그림을 볼 때, 단순히 소의 모습만 보지 말고 그 주변에 그려진 숲도 볼 줄 알아야 한다’고 하시며 하나하나의 세부적이 사항보다 음악가로서 지녀야 할 전체적인 안목의 중요성을 말씀해주셨어요.”

열한 살의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주자로서 두각을 나타낸 이유라에게 세계적인 메니지먼트사인 ICM에서 전속계약을 제의해 왔고, 그녀는 수락했다. ICM은 이차크 펄만·미도리·요요 마 그리고 장영주 등 세계 굴지의 연주
20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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