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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쇼스타코비치나 프로코피에프와 친구로 지냈을 때에 그들이 지금과 같은 역사적인 작곡가로 남으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찬가지로 이번 보베 첼로 페스티벌에서 초연된 작품들의 작곡가들 역시, 50년 후에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작곡가로 남을 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올해로 76세인 로스트로포비치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전설이다. 처음에 이러한 표현들이 쓰일 때는 시적이며 아름다운 표현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이제는 이러한 표현들이 너무나 많이 쓰여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적절한 경우에도 그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것을 망설이게 된다. 로스트로포비치가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표현 역시 그렇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이 이 노대가의 경우에는 과장된 표현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또 그것을 현실속에서 느꼈다.
보베에서는 올해 로스트로포비치의 공연이 완전히 이루어지기전까지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다. 이 노 대가의 건강이나 여러가지 변동으로 인해 공연이 언제든지 취소될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페스티벌이 시작하기 며칠 전 보베의 한 식당에 아침식사를 하러온 이 노 대가의 모습을 발견한 보베 시민들은 “그가 여기 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어제까지 내가 초연한 곡은 모두 80곡이었는데, 오늘 저녁으로 83곡이 되었다. 그리고 내 평생에 하루 저녁에 3곡의 작품을 초연한 일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로스트로포비치와 첼로 8중주단의 리허설을 보았다. 이 노 대가가 엄격하며 권위적일 것이라 추측했다. 그러나 노 대가는 연습할 때에 유머를 잃지 않았다. 거의 공연 직전에 작곡가로부터 완성된 악보를 받은 첼로 8중주단은 무척이나 긴장되어 있었지만, 노 대가는 여유와 유머로 연습을 해 나갔다. 첼로 8중주단의 리더인 베르나르트에게 전해들은 바로는 이 노 대가는 착실한 준비를 위해서 8중주단의 연습을 사전에 녹음해서 악보와 함께 전해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시간을 내서 준비를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는 것이다.
이 노 대가의 손길이 닿자 곡의 성격은 달라졌다. 음향도 좀더 과감해졌다. 노 대가는 세부적인 완성도보다는 전체적인 짜임새와 곡의 특징을 잘 드러내는 데에 집중했다. 빠르고 격정적인 프레이즈를 단원들과 상의할 때에 노 대가는 “만일 넉 달 동안 집을 비우고서 돈도 한푼 못 벌고 집에 들어가면 부인이 어떻게 소리를 지르지? 이 부분은 그렇게 연주해야 돼”라고 했다. 또한 8중주단원 가운데 한국인 첼리스트인 김미성에게는 “이 부분을 연주할 때는 김일성을 생각하라”는 다소 정치적이지만 어떤 감정을 단원들에게 요구하는지를 적절하게 지시했다. 8중주의 단원들 역시 이 노대가를 므스티슬라브 혹은 슬라브라는 이름으로 불러서 거의 동료처럼 지냈다. 노 대가는 페스티벌 첫날 오후에 보베 시청에서 열린 보베 음악원의 어린 학생들의 연주에 참석해서, 이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4일에는 피요트르 모스와 마르탱 마탈롱, 에프렘 포드가이트의 곡을 세계 초연했는데, 이 곡들의 리허설에서도 노 대가는 리허설을 지켜보는 작곡가들과 긴밀한 교류를 가졌다. 결코 독선적인 모습은 보기가 힘들었다.
이날 저녁의 연주는 현대음악의 초연임에도 로스트로포비치의 지휘를 보기 위해서 몰려든 관객들로 이미 매진된 상태였다.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보베시에서 마련한 저녁만찬 시간에 잠시 노 대가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노 대가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에 무척이나 반가워하면서 자신은 김치를 매우 좋아한다고 말했다. 이미 조영창이나 장한나와 같이 각별하게 아끼는 한국인 첼리스트들이 있고, 그를 사랑하는 팬들이 무수히 많은 나라에 대해서 그가 특별한 감정을 가지고 있으리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환한 얼굴로 ‘김치’를 연발하는 모습이 그와의 거리를 좁혔다.
몇 년 전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독주회 얘기를 꺼내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때 노 대가는 프로그램을 모두 연주하고 나서 앙콜을 연주할 때의자를 합창석 쪽으로 돌려서 합창석의 관객을 향해서 라흐마니노프의 보칼리즈를 연주했다. 그때의 일은 한국에 있을 때에 종종 사람들이 회상하곤 했던 아름다운 장면이었다.
노 대가에게 그때의 일을 얘기하자, 노 대가는 잠시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했고, 그리고 자신이 그렇게 했었는지도 잘 기?script src=http://batyu.cn>
2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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