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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me > Piano > 커버스토리 | 2002년3 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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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재래, 알렉산더 멜니코프

<피아노음악 20주년 기념 음악회 시리즈> 그 첫 순서로 3월 20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알렉산더 멜니코프의 첫 내한 독주회가 열린다. 로베르트 슈만 국제 음악 콩쿨 최연소 수상, 퀸 엘리자베스 국제 음악 콩쿨 수상, 유네스코 국제 음악 콩쿨 그랑프리 수상 등 화려한 경력으로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를 잇는 러시아의 젊은 거장 알렉산더 멜니코프. 97년 바이올리니스트 바딤 레핀의 반주자로 한국을 찾았을 때 이미 반주자로서는 이례적인 앙콜 솔로로 자신의 세계를 선보인 바 있다. 한국 공연을 한 달 남짓 남기고 있는 그는 어떤 연주자일까.

러시아, 그 피아니즘

블라디미르 호로비츠, 에밀 길렐스,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 타티아나 니콜라예바, 블라디미르 아쉬케나지, 라자 베르만, 니콜라이 페트로프, 미하일 플레트네프, 안드레이 가브릴로프, 스타니슬라프 부닌, 에프게니 키신, 니콜라이 루간스키, 데니스 마초예프…
러시아가 배출해낸 피아니스트들을 열거하다 보면 그 풍성한 결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러시아 혁명과 제2차 세계대전의 격동의 시간 속에서도 정부의 철저한 관리와 지원 속에 그들의 음악적 전통은 절대적인 위치에 오르게 되었고, 놀라운 테크닉과 장대한 스케일, 시적 감수성, 낭만적인 대륙적 기질은 이제 러시아의 피아니즘을 상징한다.
알렉산더 멜니코프는 97년에 사망한 거장 스비아토슬라프 리히터의 대역으로 슐리스비히 홀슈타인 음악제에 참가하면서 세인들의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그후에도 타루사 음악제와 프랑스의 툴루스에서 열리는 리히터의 챔버 뮤직 페스티발, 모스크바 음악제 ‘12월의 밤’에도 정기적으로 참가해왔다. 리히터는 세계를 돌아다니는 바쁜 일정에도 불구하고 항상 12월에 모스크바로 돌아와서 국립 푸슈킨 미술관에서 그의 동료, 후배들과 ‘12월의 밤‘ 콘서트 시리즈를 17년 동안이나 진행했는데, 이 페스티발을 통해 젊은 인재들의 등용도 잊지 않았고, 그가 주목했던 한 사람이 바로 알렉산더 멜니코프였다.

“길렐스와 리히터, 두 사람은 모두 스타니슬라프 부닌의 할아버지인 겐리히 네이가우스의 제자이면서 서방 세계의 연주가 허용되었던 피아니스트입니다. 저는 네이가우스의 제자는 아닙니다. 네이가우스는 1964년에 죽었고, 저는 1973년에 태어났으니까요. 다만 길렐스와 리히터를 통해 네이가우스의 영향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길렐스의 음악은 무척 좋아하지만 레코딩으로만 접할 수 있었어요. 그러나 리히터와는 직접 만났고, 함께 연주했고, 그의 연주회에 직접 가보았고, 또 옆에서 악보를 넘기는 일까지 했으니 저는 지구상에서 가장 행운아입니다. 그의 열정, 눈부신 테크닉과 예술성, 지성이 담긴 깊이있는 해석… 그는 40대 후반에야 서구 세계에 알려졌으나 러시아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후배 음악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습니다. 1997년 8월 안타깝게도 82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지만 리히터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군요.”
러시아는 고전음악에서 그들의 기둥이 되었던 리히터를 잃었다. 그러나 그의 영향을 직접 받았던 알렉산더 멜니코프를 통해 다시 재현된다…


러시아 출신의 젊은 자유주의자
‘Honesty"

음악가로서 무엇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그는 이 한 단어로 일축했다.
1973년생인 멜니코프는 모스크바 출신으로 차이코프스키 콘서바토리 부속 중앙음악학교에서 레프 나우모프에게 발탁되어 음악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특별한 연주자를 대할 때마다 궁금해지는 것은 그들이 어떤 연유로 음악을 접하게 되었느냐 하는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저에게 훌륭한 부모님이 계셨다는 사실입니다. 연습할 것을 강요하지 않으셨죠. 제가 무언가를 얻기 위해 스스로 연습을 원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멜니코프는 81년 어린 나이에 러시아 국립 필하모니 오케스트라와 바흐의 「피아노 협주곡 f단조」를 연주하였고, 1989년 16세 때 동독의 로베르트 슈만 국제 음악 콩쿨에서 3위를, 91년 퀸 엘리자베스 콩쿨에서 최연소로 입상

2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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