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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준비되고 있었다.
몇 번 한국을 찾아왔지만 이번 7월 그의 공연이 이상하게 설레고 기다려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름대로 준비한 자료와 질문서를 확인하고 그에게 한통의 메일을 보냈다.
이제 그와 메일로 나눈 많은 이야기들을 시작한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음반사 채널(Channel)

채널 클래식스는 피터 비스펠베이가 세계적인 음반사로 만든 곳으로 따스하며 포근한 레코딩으로 전문가들로부터 추구해야 할 레코드 제작사로 꼽히고 있다.
1989년에 채널 클래식스 레이블의 첫 작품으로 탄생한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전곡 음반에서 거트현과 바로크 첼로를 사용해 비브라토를 거의 쓰지 않는 연주를 보였으며 이 음반을 통해 그의 이름은 전 유럽에 알려졌다.
그는 뛰어난 테크닉과 음악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바로크와 모던 첼로 모두를 다룰 수 있는 흔치 않은 첼리스트다.
피터 비스펠베이. ‘제2의 안너 빌스마’로 알려진 그는 암스테르담 음악원에서 고음악 전문 첼리스트인 안너 빌스마를 사사했고, 졸업 후 영국으로 건너가 자클린느 뒤 프레의 스승인 윌리엄 프리스와 미국 로체스터 음대에서 폴 카츠를 사사했다.
1985년 네덜란드의 유망주에게 수상하는 엘리자베스 에버츠상을 받으며 본격적인 솔리스트로 나섰다.
오래된 도시, 오래된 건축양식을 좋아한다
그를 처음 만난 건 2000년 10월28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 마련된 무대에서였다.
비스펠베이는 깨끗한 하얀색 셔츠를 입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전6곡을 순서대로 연주했는데 아직도 그때의 감동을 잊지 못한다.
우아한 팔의 동작과 바흐에 대한 그의 열정이 모든 청중들에게 똑같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당시 전 13세였습니다. 안너 빌스마의 연주를 듣고 전 처음으로 표현할 수 없는 음악적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곡은 내게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에 대한 첫 인상을 이렇게 말했다.
네 살 때부터 피아노를 공부했던 비스펠베이는 피아노 선생님을 통해 첼로를 배우게 되었다.
처음 그의 꿈은 연주가가 아닌 작곡가였다. 그는 열정적인 곡들도 많이 썼다고 말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한 취미였다.
“첫 녹음은 26살 때였어요. 무엇보다 즐거웠던 일은 그 일이 힘든 일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정말 기뻤고, 특히 그 곡이 바흐의 무반주 모음곡이라 더욱 좋았습니다.
쇼스타코비치와 비발디의 콘체르토, 브리튼의 음반 녹음은 제게 있어 아직까지 행복한 기억입니다.”
바로크·고전·낭만·현대 음악에 이르기까지 모든 일을 소화해내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까?
“어떤 비밀이나 비결이 있는 건 아닙니다. 왜냐면 사실 첼로곡들이 그다지 많은 편은 못되니까요. 시대별로 많은 양이 아니기 때문에 내가 여러 가지를 해내는 것은 특별한 비밀이 될 수는 없죠.”
오래된 건축양식을 좋아하고, 오래된 도시의 장소나 마을을 좋아한다는 그는 이런 것들과 관련된 책도 많이 읽는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한국에 대한 기억을 물어봤다.
“한국에서의 공연은 항상 축제였습니다. 잊지 못할 기억입니다. 1996년 첫 내한공연 때 공연이 끝난 후 2시간이 넘게 줄을 서서 사인을 받았던 청중의 열띤 호응은 지금도 절 들뜨게 합니다. 특히 유럽에 비해 젊은 관객들이 많았어요. 또 2000년 10월 28일 공연에서는 그 다음날 두물 워크숍의 특별 연주회를 위해 양수리를 갔습니다. 그 곳에서 전 한국의 음악에 대한 열정을 보았고 각종 나물과 산적 등 한국 특유의 음식도 맛보았습니다. 참 젓가락을 다루는 법과 책상다리는 제게 조금은 힘든 일이었지만요. 한국은 아름다운 곳입니다. 특히 한국의 많은 음악가들은 정말 진실하고 순수합니다.”
내친김에 혹시 재미있는 얘기나 알고 있는 음악가들의 에피소드를 말해달라고 엉뚱한 부탁을 했다.&
2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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