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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힐러리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힐러리 한(Hilary Hahn)이 자신의 데뷔 앨범으로 바흐의 무반주 바이올린 곡을 들고 나온 1997년 이후, 그녀는 끊임없이 주목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라모폰>, <팡파레> 등 클래식 음반잡지들을 필두로 수많은 잡지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힐러리 한’이라는 주제어에 열광했다. 거의 신드롬이라고 할 만큼 그녀에 대한 기사는 쏟아져 나왔고, 이 점은 국내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띠었다. 따라서 필자가 그녀의 바이오그래피에 대해 다시 서술한다는 것은 또 다른 의미의 진부함에 가까울 것이다. 다만 그녀가 도로시 딜레이의 제자-1980년대부터 수없이 등장한-가 아니라는 점은 다시 언급해도 좋을 흥미로운 요소다.
힐러리에게서는 몇 가지 특징적인 면이 부각되는데, 무엇보다 그녀가 선택한 레퍼토리가 신인으로서 쉽게 택하는 곡이 아니라는 점이다. 참고로 정경화의 경우는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레코딩 데뷔를 했고, 장영주는 바이올린 소품집으로 데뷔 앨범을 꾸몄다.
바흐로부터 시작된 힐러리 한의 레코딩 카테고리는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과 번스타인의 세레나데로, 그리고 바버와 마이어의 바이올린 협주곡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에 출시된 브람스와 스트라빈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그녀를 겁없는 앙팡테리블(enfant terrible)에서 우리 시대의 비르투오조로서 다시 바라보게 만들고 있다. 사실, 어떤 신예 연주자가 자신의 디스코그라피를 이런 식으로 꾸미는 경우는 쉽게 보지 못했다. 더구나 바흐, 베토벤, 브람스로 이어지는 전통의 무게는 상당히 큰 것이고, 종종 신예연주가로서 이런 레퍼토리를 음반으로 발매한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부담감을 안기 마련이다. 멘델스존이나 차이코프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이라면 몰라도, 베토벤과 브람스라면 가장 핵심적이면서 총괄적인 레퍼토리이기 때문이다. 이미 거장들의 연주가 너무 많으며 또한 발매 즉시 기존의 레코딩들과 바로 비교되는, 그리하여 곧바로 평가절하(平價切下)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힐러리 한의 경우는 어떠한가? 현재까지 그녀의 모험(?)은 꽤나 성공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녀의 바흐가 ‘힐러리 한’이라는 비범한 존재를 알리는 시작이었다면 베토벤과 바버는 그녀의 지지기반을 확고하게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그녀의 협주곡 레코딩에서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고전과 현대의 절묘한 커플링이다. 베토벤과 번스타인의 조합이 그렇고, 바버와 마이어, 그리고 이번의 브람스와 스트라빈스키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물론 현대적인 레퍼토리의 습득은 이미 새로운 세대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잡은 지 오래이기는 하다). 따라서 그녀의 다음 레코딩에 대한 기대를 갖게 만든다. 그녀가 음반으로 발매한 곡들은 대부분, 그녀가 콘서트에서 수없이 연주하면서 그 곡에 대한 이해를 넓힌 뒤 이것이 자신감의 부피로 채워지면 레코딩으로 이어진 곡들이란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에 발매된 브람스도 그랬고, 그 전의 베토벤도 그러했다(이 점은 같은 소니 레이블의 조슈아 벨이 레코딩에 임하는 자세와 흡사하다). 그럼 다음에는 모차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될 확률도 무시하지 못하게 된다.
다시 한번 강조하자면 그녀의 이런 발빠른 행보는 쉽게 화제가 되고, 또 그만큼 쉽게 잊혀지는 수많은 분더킨트(Wunderkind)들 사이에서 힐러리 한의 위치가 얼마나 공고한 것인지를 입증하는 물적 증거다. 요컨대 “힐러리에게는 무엇인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말로 요약될 수 있으며 그녀의 레퍼토리 선정은 그 ‘무엇’을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지점이다(필자가 확인한 바에 의하면 그녀는 소니레코드사와 전속계약을 맺을 당시, 레퍼토리의 자유로운 선택권을 보장받았다). 한마디로 빠르게 재편되는 클래식계에서 ‘정면돌파’하려는 욕구로 해석되며 그것은 일종의 진검(眞劍)승부다.

⊙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이제 21세가 된 힐러리 한이 그녀의 네 번째 공식 앨범으로 발매한 음반을 들어보자. 브람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제1악장의 17마디에서 시작하는 주제에서 네빌 마리너는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가 협연자를 잘못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최악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지만, 평면적인 반주에 그치고 말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브람스의 이 협주곡은 리토르넬로 양식의 모든 특징적인 면모를 강하게 반영하고 있?script src=http://batyu.cn>

20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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